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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원리가 궁금하다면 읽어보라.

차유철

Published Jan 1, 2014• 0 ci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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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얼마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입자의 희한한 행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 영하였다. 관찰하지 않으면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두 곳에 나타나지만, 관찰을 하기만 하면 한 곳에만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의 존재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한 다는 것은 전통적인 물리학 이론에 위배되는 것이지만, 양자는 입자이자 파동이 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입자는 파동에 의해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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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직함과 가능 세계

김명석

신념도 또는 믿음직함은 우리를 자주 혼란스럽게 한다. 믿음직함의 혼란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예는 잠자는 미녀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합당한 답이 1/3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른바 ‘가능주의 계산 방식’이라는 것을 따르고 있다. 이 방식은 가능한 일들이 모두 벌어진다고 가정한 후, 이 가운데서 자기 자신이 몇 군데 있을 수 있는지를 헤아림으로써 믿음직함을 계산한다. 양자역학의 많은 세계 해석을 지지하는 베이드먼과 소운더스는 가능주의 계산 방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잠자는 미녀 사고실험을 여러 주에 걸쳐 반복할 경우, 1/2주의자는 한 주에 걸쳐 진행할 경우와는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일반화된 잠자는 미녀 문제를 가능주의 계산 방식에 따라 풀이할 경우 매우 야릇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는 가능주의 계산 방식이 미덥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일반화된 잠자는 미녀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할 경우에도 가능주의 계산 방식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이 생긴 까닭은 동전을 던지는 시점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잠자는 미녀 사고실험을 여러 주에 걸쳐 반복하고자 한다면, 각 주의 일요일에 동전을 던져야 한다.

범한철학•Mar 1, 2016•0 citations

비국소성 숨은변수이론의 제안

여상훈

주어진 세 가지 단서에 의해 시공간 연속체는 기저 벡터인 단위 시간과 단위 공간의 동시성 팽창 수축 상태를 그 속성으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의 부분 수정을 유도하며 그 결과 ‘모든 관성계 내에서 광속은 불변하다’라는 특수상대성이론의 원형은 그대로 보전한 채 비관성계에서는 초광속 현상과 비국소성을 허용한다. 시간 공간 팽창 정도가 다른 시공간 연속체는 시공간의 아코디언 효과를 유도한다. 이는 결정론적 양자역학 이론에 있어서 숨은 변수로서의 역할을 한다. 전자의 이중슬릿실험에 있어서 입자인 전자 자체는 무작위로 골고루 뿌려지나 전자의 이동에 의해 병행되어 나타나는 시공간 파동은 화면 주위의 시공간으로 하여금 아코디언 현상을 나타내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전자 분포의 간섭 패턴을 형성된다. 이와 같은 시공간 팽창 수축에 의하여 발생하는 숨은 변수의 속성은 UFO의 움직임과 영체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가능케 한다.

한국정신과학회 학술대회논문집•Dec 1, 2011•0 citations

양자역학으로 본 평화의 의미

진성배

본고는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의 주제로 인지되는 평화의 문제를 자연과학의 시각에서 고찰 하고, 과학사의 논쟁과정에서 얻는 탐구의 논리와 지혜를 평화의 이념이나 평화연구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로 마련된 것이다. 과학기술을 평화에 이용하려는 관점에서 과학을 다루는 시도는 많겠지만 과학의 논쟁사를 통해 평화의 이념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흔치않을 것이고, 그만큼 본 고의 논의는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논자는 이처럼 맛 닿을 수 없는 순수과학과 평화문제 의 거리감은 물론, 넘을 수 없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공고한 벽을 실감하며 그 해결책의 일 환으로 양자역학의 모델을 주제로 다루려한다. 첫째로, 논자는 20세기 과학혁명의 정점인 아 인슈타인과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역학에 대한 불꽃 튀는 논쟁을 정리하고, 그 논쟁에서 나타난 양자역학의 실재론과 실증론에 대한 과학적인 실체관을 음미하고, 그 논의의 쟁점을 수용하며 현대 물리학의 실체관을 새롭게 이해하는 지평을 마련해 보려 한다. 둘째로, 전장의 논의를 통 해서 야기된 양자역학의 실체관과 표준이론이 남긴 패러독스, 그리고 과학혁명의 성격을 분석 하고, 그 분석을 통해 대립과 갈등을 공존과 통일로 이끄는 평화의 이념을 도출해 보일 것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정의로 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영어로 science라고 번 역되고, 독일어로 wissenschaft 로 번역되는 넓은 의미의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 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여러 학문을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이라는 통상적인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에서 다루는 과학도 통상적 의미의 자연 과학을 말하며 특히 현대물리학의 주제로 제한하여 다룰 것이다. 자연과학은 물리학, 화학, 생 물학, 천문학, 지구과학 등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한 학문으로 자연의 합법칙성에 대한 이론을 연구하는 분야를 의미한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철학을 ‘메타피지카metaphysica’라 고 칭하고, 자연학(physica)의 ‘맨 뒤(meta; after)’에 제일철학을 배열하는 서지학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후에, 그의 제자들이 '메타meta'라는 말을 강조하여 자연학을 ‘초월한다 (메타meta)’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제일철학을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자연학은 형이하학(形而下學)인 바, 자연과학 이 독립된 학문분야로 인정되기 전까지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은 ‘자연철학’의 명칭으로 사용되 었던 것이다. 물리학(physics)이라는 명칭이 세분되기 이전, ‘프린키피아principia’로 널리 알 려진 뉴턴 고전역학의 명저인 ‘자연철학의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도 물리학 이 아니라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현대의 논리철학에서 ‘메타언어 meta language’와 ‘대상언어 object language’를 구분해 서 사용하고 있는데,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을 지시하는 대상언어와 관련된 학문이라면 철학은 대상언어 자체를 다루는 메타언어와 관련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언어와 메타언어를 유형적으로 나누는 럿셀의 방식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철학이나 인문학은 대상언어를 다루는 자연과학과 다르기 때문에 ‘인문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분류해서 ‘인문과학’이라는 명칭을 사 용하는 것은 숙고해 보아야 할 과제라고 본다.

•Dec 1, 2016•0 citations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계의 양자 얽힘

이혁재

양자상태의 얽힘을 양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두 부분으로 구성된 순수 양자상태는 쉽게 얽힘을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으나 혼합된 형태의 양자상태는 양자 얽힘을 판별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부분이 많아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순수 상태도 그 판별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논문에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 혼합 상태로의 적용에 대하여 논의한다.

Journal of the Korean Magnetics Society•Feb 1, 2006•0 citations

광목표 생성과 공통시간의 물리학: 빛의 출발 순간 생성되는 시간표지 목표와 하나의 공동 실험에 존재하는 실제 시간

동윤 곽

본 논문은 특수상대성이론의 기차 사고실험에서 사용되는 ‘빛의 관측’과 ‘시간의 실재’를 두 단계로 분리하여 재검토한다. 첫 번째 핵심축은 광목표 생성 원리다. 눈, 카메라, 광검출기는 물체의 현재 실체를 직접 받지 않는다. 검출된 빛은 이전의 발신 사건에서 출발했으며, 발신 순간의 물체 상태에 관한 광학적 부분정보가 전자기 신호에 부호화된다. 본 논문은 이 시간표지 상태표상을 기술용어로 ‘광목표’라 정의한다. 광목표는 빛의 진행 방향이나 나중에 빛을 흡수한 충돌체와 다르다. 방향은 시간에 결박되지 않은 공간적 진행축이지만, 광목표는 발신 시각 t_e와 발신 사건 E에 결박된다. 기차가 빛의 전파시간 동안 앞으로 이동하여 수신 사건 R에서 빛과 만났다면, R에서 빛을 맞은 기차 상태 O(t_r)는 수신체·충돌체일 뿐, O(t_e)의 상태표상으로 생성된 광목표 M_E와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영상의 도착순서만으로 사건 발생순서나 실제 시간을 판정하는 시각논증은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핵심축은 공통시간이다. 기차 안 사람과 기차 밖 사람이 동일한 시작 사건에서 하나의 공동 실험을 시작했다면 그 실험의 실제 진행은 하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본 논문은 그 실제 진행을 나타내는 시간을 공통시간 C라 부르고, C를 우주 전체의 절대시간이나 제3의 독립 시계값이 아니라 기차 안 시간과 기차 밖 시간 중 하나와 일치하는 값으로 제한하는 ‘일치 조건’을 둔다. 따라서 t안≠t밖이고 C∈{t안,t밖}이라는 일치 조건을 받아들이면 두 값은 동시에 동일한 의미의 공통시간일 수 없다. 저자는 어느 쪽이 공통시간인지 선택하지 않는다. 이 결론은 조건부 딜레마이며, 시계 기록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정식 특수상대성이론은 세계선별 고유시간을 제시하고 단일 실험 전체에 별도의 공통 스칼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광학적 시각논증을 직접 반증하는 부분과, 공통시간 일치 조건을 둘러싼 존재론적 논쟁을 명확히 분리한다.

•Jul 19, 2026•0 citations

양자역학 태동기의 이원론에 관한 역사적 연구

안호영

베르그송은 당대의 과학적 결과를 끊임없이 참조했으며, 뛰어난 분석력을 바탕으로 이를 자신의 사유 속에서 오랜 시간 응축시켜낸 놀라운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물론 이것은 베르그송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은 아니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뉴턴의 고전역학을 경이롭게 바라본 철학자가 제시하는 놀라운 사색의 결과물로서, 그의 철학은 과학적 결과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수용할 것인가를 보여준 좋은 선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반대 방향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과학이 철학적 결과를 수용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본 논의는 이러한 질문을 베르그송의 사유에 대해 제기하고, 양자역학의 개념을 베르그송의 사유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본 논의는 제기된 질문을 두 가지 방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베르그송이 자신의 사유를 전개했을 당시의 시대상과 새로운 과학이 태동하여 전개되는 시기의 시대상을 역사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베르그송은 자신이 직면한 시대적 한계와의 대결을 통해 새로운 형이상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유는 새로운 과학이 출현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과학적 시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서, 양자역학에 등장한 이원론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원론은 양자역학의 형성과정에서 주조된 개념인 ‘입자-파동 이중성’ 문제 그리고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정형화되었는데, 우리는 이러한 개념이 베르그송의 사유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코기토•Aug 1, 2011•0 citations
얼마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입자의 희한한 행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
영하였다. 관찰하지 않으면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두 곳에 나타나지만, 관찰을
하기만 하면 한 곳에만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의 존재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한
다는 것은 전통적인 물리학 이론에 위배되는 것이지만, 양자는 입자이자 파동이
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입자는 파동에 의해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신념도 또는 믿음직함은 우리를 자주 혼란스럽게 한다. 믿음직함의 혼란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예는 잠자는 미녀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합당한 답이 1/3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른바 ‘가능주의 계산 방식’이라는 것을 따르고 있다. 이 방식은 가능한 일들이 모두 벌어진다고 가정한 후, 이 가운데서 자기 자신이 몇 군데 있을 수 있는지를 헤아림으로써 믿음직함을 계산한다. 양자역학의 많은 세계 해석을 지지하는 베이드먼과 소운더스는 가능주의 계산 방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잠자는 미녀 사고실험을 여러 주에 걸쳐 반복할 경우, 1/2주의자는 한 주에 걸쳐 진행할 경우와는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일반화된 잠자는 미녀 문제를 가능주의 계산 방식에 따라 풀이할 경우 매우 야릇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는 가능주의 계산 방식이 미덥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일반화된 잠자는 미녀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할 경우에도 가능주의 계산 방식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이 생긴 까닭은 동전을 던지는 시점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잠자는 미녀 사고실험을 여러 주에 걸쳐 반복하고자 한다면, 각 주의 일요일에 동전을 던져야 한다.
주어진 세 가지 단서에 의해 시공간 연속체는 기저 벡터인 단위 시간과 단위 공간의 동시성 팽창 수축 상태를 그 속성으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의 부분 수정을 유도하며 그 결과 ‘모든 관성계 내에서 광속은 불변하다’라는 특수상대성이론의 원형은 그대로 보전한 채 비관성계에서는 초광속 현상과 비국소성을 허용한다. 시간 공간 팽창 정도가 다른 시공간 연속체는 시공간의 아코디언 효과를 유도한다. 이는 결정론적 양자역학 이론에 있어서 숨은 변수로서의 역할을 한다. 전자의 이중슬릿실험에 있어서 입자인 전자 자체는 무작위로 골고루 뿌려지나 전자의 이동에 의해 병행되어 나타나는 시공간 파동은 화면 주위의 시공간으로 하여금 아코디언 현상을 나타내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전자 분포의 간섭 패턴을 형성된다. 이와 같은 시공간 팽창 수축에 의하여 발생하는 숨은 변수의 속성은 UFO의 움직임과 영체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가능케 한다.
본고는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의 주제로 인지되는 평화의 문제를 자연과학의 시각에서 고찰 하고, 과학사의 논쟁과정에서 얻는 탐구의 논리와 지혜를 평화의 이념이나 평화연구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로 마련된 것이다. 과학기술을 평화에 이용하려는 관점에서 과학을 다루는 시도는 많겠지만 과학의 논쟁사를 통해 평화의 이념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흔치않을 것이고, 그만큼 본 고의 논의는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논자는 이처럼 맛 닿을 수 없는 순수과학과 평화문제 의 거리감은 물론, 넘을 수 없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공고한 벽을 실감하며 그 해결책의 일 환으로 양자역학의 모델을 주제로 다루려한다. 첫째로, 논자는 20세기 과학혁명의 정점인 아 인슈타인과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역학에 대한 불꽃 튀는 논쟁을 정리하고, 그 논쟁에서 나타난 양자역학의 실재론과 실증론에 대한 과학적인 실체관을 음미하고, 그 논의의 쟁점을 수용하며 현대 물리학의 실체관을 새롭게 이해하는 지평을 마련해 보려 한다. 둘째로, 전장의 논의를 통 해서 야기된 양자역학의 실체관과 표준이론이 남긴 패러독스, 그리고 과학혁명의 성격을 분석 하고, 그 분석을 통해 대립과 갈등을 공존과 통일로 이끄는 평화의 이념을 도출해 보일 것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정의로 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영어로 science라고 번 역되고, 독일어로 wissenschaft 로 번역되는 넓은 의미의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 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여러 학문을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이라는 통상적인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에서 다루는 과학도 통상적 의미의 자연 과학을 말하며 특히 현대물리학의 주제로 제한하여 다룰 것이다. 자연과학은 물리학, 화학, 생 물학, 천문학, 지구과학 등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한 학문으로 자연의 합법칙성에 대한 이론을 연구하는 분야를 의미한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철학을 ‘메타피지카metaphysica’라 고 칭하고, 자연학(physica)의 ‘맨 뒤(meta; after)’에 제일철학을 배열하는 서지학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후에, 그의 제자들이 '메타meta'라는 말을 강조하여 자연학을 ‘초월한다 (메타meta)’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제일철학을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자연학은 형이하학(形而下學)인 바, 자연과학 이 독립된 학문분야로 인정되기 전까지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은 ‘자연철학’의 명칭으로 사용되 었던 것이다. 물리학(physics)이라는 명칭이 세분되기 이전, ‘프린키피아principia’로 널리 알 려진 뉴턴 고전역학의 명저인 ‘자연철학의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도 물리학 이 아니라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현대의 논리철학에서 ‘메타언어 meta language’와 ‘대상언어 object language’를 구분해 서 사용하고 있는데,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을 지시하는 대상언어와 관련된 학문이라면 철학은 대상언어 자체를 다루는 메타언어와 관련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언어와 메타언어를 유형적으로 나누는 럿셀의 방식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철학이나 인문학은 대상언어를 다루는 자연과학과 다르기 때문에 ‘인문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분류해서 ‘인문과학’이라는 명칭을 사 용하는 것은 숙고해 보아야 할 과제라고 본다.
양자상태의 얽힘을 양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두 부분으로 구성된 순수 양자상태는 쉽게 얽힘을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으나 혼합된 형태의 양자상태는 양자 얽힘을 판별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부분이 많아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순수 상태도 그 판별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논문에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 혼합 상태로의 적용에 대하여 논의한다.
본 논문은 특수상대성이론의 기차 사고실험에서 사용되는 ‘빛의 관측’과 ‘시간의 실재’를 두 단계로 분리하여 재검토한다. 첫 번째 핵심축은 광목표 생성 원리다. 눈, 카메라, 광검출기는 물체의 현재 실체를 직접 받지 않는다. 검출된 빛은 이전의 발신 사건에서 출발했으며, 발신 순간의 물체 상태에 관한 광학적 부분정보가 전자기 신호에 부호화된다. 본 논문은 이 시간표지 상태표상을 기술용어로 ‘광목표’라 정의한다. 광목표는 빛의 진행 방향이나 나중에 빛을 흡수한 충돌체와 다르다. 방향은 시간에 결박되지 않은 공간적 진행축이지만, 광목표는 발신 시각 t_e와 발신 사건 E에 결박된다. 기차가 빛의 전파시간 동안 앞으로 이동하여 수신 사건 R에서 빛과 만났다면, R에서 빛을 맞은 기차 상태 O(t_r)는 수신체·충돌체일 뿐, O(t_e)의 상태표상으로 생성된 광목표 M_E와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영상의 도착순서만으로 사건 발생순서나 실제 시간을 판정하는 시각논증은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핵심축은 공통시간이다. 기차 안 사람과 기차 밖 사람이 동일한 시작 사건에서 하나의 공동 실험을 시작했다면 그 실험의 실제 진행은 하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본 논문은 그 실제 진행을 나타내는 시간을 공통시간 C라 부르고, C를 우주 전체의 절대시간이나 제3의 독립 시계값이 아니라 기차 안 시간과 기차 밖 시간 중 하나와 일치하는 값으로 제한하는 ‘일치 조건’을 둔다. 따라서 t안≠t밖이고 C∈{t안,t밖}이라는 일치 조건을 받아들이면 두 값은 동시에 동일한 의미의 공통시간일 수 없다. 저자는 어느 쪽이 공통시간인지 선택하지 않는다. 이 결론은 조건부 딜레마이며, 시계 기록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정식 특수상대성이론은 세계선별 고유시간을 제시하고 단일 실험 전체에 별도의 공통 스칼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광학적 시각논증을 직접 반증하는 부분과, 공통시간 일치 조건을 둘러싼 존재론적 논쟁을 명확히 분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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