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실재성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과학적으로 고찰하고 불교를 현대적 용어와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먼저 실재성에 관한 불교적 관점인 공의 종교적 의미를 설명하고 공의 의미 를 현대 물리학적으로 고찰하였다. 공은 불교의 핵심적 개념인 연기법의 논리적 귀결로서 없음을 의미하지만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기법은 고정된 상태를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가 이중성(二重性,duality)을 사물의 본질이라고 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연기법에 의해 없음에는 필연적으로 없음에서 벗어나려는 작용 이 수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은 없음과 함께 없음에서 벗어나려는 작용이라는 두 가지 뜻을 함께 갖게 된다. 이는 공의 개념 속에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것을 현대물리학의 바탕을 이루는 양자론(量子論 quantum theory)의 핵심적 개념들과 비교하였다. 양자론의 핵심적인 내용으로서는 입자~파동의 이중성,EPR 파라독스와 벨(Bell)의 정리를 설명하고 이들이 불교의 ‘공’을 뒷받침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 글의 목적은 실재성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과학적으로 고찰하고 불교를 현대적 용어와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먼저 실재성에 관한 불교적 관점인 공의 종교적 의미를 설명하고 공의 의미 를 현대 물리학적으로 고찰하였다. 공은 불교의 핵심적 개념인 연기법의 논리적 귀결로서 없음을 의미하지만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기법은 고정된 상태를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가 이중성(二重性,duality)을 사물의 본질이라고 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연기법에 의해 없음에는 필연적으로 없음에서 벗어나려는 작용 이 수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은 없음과 함께 없음에서 벗어나려는 작용이라는 두 가지 뜻을 함께 갖게 된다. 이는 공의 개념 속에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것을 현대물리학의 바탕을 이루는 양자론(量子論 quantum theory)의 핵심적 개념들과 비교하였다. 양자론의 핵심적인 내용으로서는 입자~파동의 이중성,EPR 파라독스와 벨(Bell)의 정리를 설명하고 이들이 불교의 ‘공’을 뒷받침한다는 것을 보였다.
과학은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객관성은 객관적일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 명제는 우주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절대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상대적인 절대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현대 양자역학의 실험 결과를 근거로 하여 검토하였다. 결론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성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절대성이라는 것도 다만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한 주체만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성을 따질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과학은 객관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하여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과학과 철학의 연결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종교와 과학의 벽이 허물어지고 이성과 감성의 간격이 메워지는 현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재에 관한‘신적(혹은 외재적)관점’은 근본적으로 인식가능하지 않은 대상?l 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반면, 퍼트남(H. Putnam)의 내재적 실재론은 처음부터‘인간적(혹은 내재적)관점’에서 인간의 인식능력 안에서 주장가능한 실재론을 제안하고 잇다. 이는 점점 추상화디고 직접 관찰가능하지 않은 대상들을 언급하는 현대 과학이론에 대한 실재론 논의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자체의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이 관점은 긍정적인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어 왔다. 본 논문은 과학이론의 표준으로 볼 수 있는 물리학 이론 그 가운데서도 사물 인식의 가장 일반적인 틀을 제공해 온 양자 이론의 인식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내재적 실재론의 주요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옹호하고 이를 기초로 (비록 부분적이지만) 내재적 실재론에 가해진 비판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고에서는 먼저 양자이론의 대상 인식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양자이론의 개념체계와 더불어 매우 일반적인 사물 인식구조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분석의 결과들을 내재적 실재론의 핵심적인 주장들과 비교 분석할 것이다. 그 결과 상당한 유사성이 보이는데, 이는 경험적 가설인 내재적 실재론의 관점을 옹호하는 과학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자이론의 사물 인식과정에 비추어 내재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적 보완이 모색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다. 특히 내재적 실재론은 과연 실재론인가라는 비판에 대해, 양자이론의 인식과정 안에서 ‘무엇이 실재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실용적 관점에서 정당화가 가능한 실재에 관한 주장이 내재적 실재론과 정합적임을 주장할 것이다. 또한 상대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내재적 실재론에 어떤 주장들이 보안 또는 강조되어야 하는지도 검토될 것이다.
본고는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의 주제로 인지되는 평화의 문제를 자연과학의 시각에서 고찰 하고, 과학사의 논쟁과정에서 얻는 탐구의 논리와 지혜를 평화의 이념이나 평화연구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로 마련된 것이다. 과학기술을 평화에 이용하려는 관점에서 과학을 다루는 시도는 많겠지만 과학의 논쟁사를 통해 평화의 이념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흔치않을 것이고, 그만큼 본 고의 논의는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논자는 이처럼 맛 닿을 수 없는 순수과학과 평화문제 의 거리감은 물론, 넘을 수 없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공고한 벽을 실감하며 그 해결책의 일 환으로 양자역학의 모델을 주제로 다루려한다. 첫째로, 논자는 20세기 과학혁명의 정점인 아 인슈타인과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역학에 대한 불꽃 튀는 논쟁을 정리하고, 그 논쟁에서 나타난 양자역학의 실재론과 실증론에 대한 과학적인 실체관을 음미하고, 그 논의의 쟁점을 수용하며 현대 물리학의 실체관을 새롭게 이해하는 지평을 마련해 보려 한다. 둘째로, 전장의 논의를 통 해서 야기된 양자역학의 실체관과 표준이론이 남긴 패러독스, 그리고 과학혁명의 성격을 분석 하고, 그 분석을 통해 대립과 갈등을 공존과 통일로 이끄는 평화의 이념을 도출해 보일 것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정의로 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영어로 science라고 번 역되고, 독일어로 wissenschaft 로 번역되는 넓은 의미의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 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여러 학문을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이라는 통상적인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에서 다루는 과학도 통상적 의미의 자연 과학을 말하며 특히 현대물리학의 주제로 제한하여 다룰 것이다. 자연과학은 물리학, 화학, 생 물학, 천문학, 지구과학 등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한 학문으로 자연의 합법칙성에 대한 이론을 연구하는 분야를 의미한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철학을 ‘메타피지카metaphysica’라 고 칭하고, 자연학(physica)의 ‘맨 뒤(meta; after)’에 제일철학을 배열하는 서지학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후에, 그의 제자들이 '메타meta'라는 말을 강조하여 자연학을 ‘초월한다 (메타meta)’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제일철학을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자연학은 형이하학(形而下學)인 바, 자연과학 이 독립된 학문분야로 인정되기 전까지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은 ‘자연철학’의 명칭으로 사용되 었던 것이다. 물리학(physics)이라는 명칭이 세분되기 이전, ‘프린키피아principia’로 널리 알 려진 뉴턴 고전역학의 명저인 ‘자연철학의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도 물리학 이 아니라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현대의 논리철학에서 ‘메타언어 meta language’와 ‘대상언어 object language’를 구분해 서 사용하고 있는데,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을 지시하는 대상언어와 관련된 학문이라면 철학은 대상언어 자체를 다루는 메타언어와 관련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언어와 메타언어를 유형적으로 나누는 럿셀의 방식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철학이나 인문학은 대상언어를 다루는 자연과학과 다르기 때문에 ‘인문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분류해서 ‘인문과학’이라는 명칭을 사 용하는 것은 숙고해 보아야 할 과제라고 본다.
본 논문은 특수상대성이론의 기차 사고실험에서 사용되는 ‘빛의 관측’과 ‘시간의 실재’를 두 단계로 분리하여 재검토한다. 첫 번째 핵심축은 광목표 생성 원리다. 눈, 카메라, 광검출기는 물체의 현재 실체를 직접 받지 않는다. 검출된 빛은 이전의 발신 사건에서 출발했으며, 발신 순간의 물체 상태에 관한 광학적 부분정보가 전자기 신호에 부호화된다. 본 논문은 이 시간표지 상태표상을 기술용어로 ‘광목표’라 정의한다. 광목표는 빛의 진행 방향이나 나중에 빛을 흡수한 충돌체와 다르다. 방향은 시간에 결박되지 않은 공간적 진행축이지만, 광목표는 발신 시각 t_e와 발신 사건 E에 결박된다. 기차가 빛의 전파시간 동안 앞으로 이동하여 수신 사건 R에서 빛과 만났다면, R에서 빛을 맞은 기차 상태 O(t_r)는 수신체·충돌체일 뿐, O(t_e)의 상태표상으로 생성된 광목표 M_E와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영상의 도착순서만으로 사건 발생순서나 실제 시간을 판정하는 시각논증은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핵심축은 공통시간이다. 기차 안 사람과 기차 밖 사람이 동일한 시작 사건에서 하나의 공동 실험을 시작했다면 그 실험의 실제 진행은 하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본 논문은 그 실제 진행을 나타내는 시간을 공통시간 C라 부르고, C를 우주 전체의 절대시간이나 제3의 독립 시계값이 아니라 기차 안 시간과 기차 밖 시간 중 하나와 일치하는 값으로 제한하는 ‘일치 조건’을 둔다. 따라서 t안≠t밖이고 C∈{t안,t밖}이라는 일치 조건을 받아들이면 두 값은 동시에 동일한 의미의 공통시간일 수 없다. 저자는 어느 쪽이 공통시간인지 선택하지 않는다. 이 결론은 조건부 딜레마이며, 시계 기록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정식 특수상대성이론은 세계선별 고유시간을 제시하고 단일 실험 전체에 별도의 공통 스칼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광학적 시각논증을 직접 반증하는 부분과, 공통시간 일치 조건을 둘러싼 존재론적 논쟁을 명확히 분리한다.
실재에 관한‘신적(혹은 외재적)관점’은 근본적으로 인식가능하지 않은 대상?l 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반면, 퍼트남(H. Putnam)의 내재적 실재론은 처음부터‘인간적(혹은 내재적)관점’에서 인간의 인식능력 안에서 주장가능한 실재론을 제안하고 잇다. 이는 점점 추상화디고 직접 관찰가능하지 않은 대상들을 언급하는 현대 과학이론에 대한 실재론 논의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자체의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이 관점은 긍정적인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어 왔다. 본 논문은 과학이론의 표준으로 볼 수 있는 물리학 이론 그 가운데서도 사물 인식의 가장 일반적인 틀을 제공해 온 양자 이론의 인식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내재적 실재론의 주요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옹호하고 이를 기초로 (비록 부분적이지만) 내재적 실재론에 가해진 비판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고에서는 먼저 양자이론의 대상 인식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양자이론의 개념체계와 더불어 매우 일반적인 사물 인식구조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분석의 결과들을 내재적 실재론의 핵심적인 주장들과 비교 분석할 것이다. 그 결과 상당한 유사성이 보이는데, 이는 경험적 가설인 내재적 실재론의 관점을 옹호하는 과학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자이론의 사물 인식과정에 비추어 내재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적 보완이 모색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다. 특히 내재적 실재론은 과연 실재론인가라는 비판에 대해, 양자이론의 인식과정 안에서 ‘무엇이 실재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실용적 관점에서 정당화가 가능한 실재에 관한 주장이 내재적 실재론과 정합적임을 주장할 것이다. 또한 상대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내재적 실재론에 어떤 주장들이 보안 또는 강조되어야 하는지도 검토될 것이다.
이 논문은 장자의 세계 이해와, 그 세계 안의 개별자인 인간이 따라야 할 삶의 태도로서 안명무위를 양자 물리학의 세계상을 통해 독해한 것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원자 이하의 미시 세계에는 기존의 개념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순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소립자들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이 말은 관찰하기 전까지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아가 소립자는 다른 체계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만 정의되거나 관찰될 수 있다. 관찰 행위 자체가 대상과 상호 작용을 일으켜 관찰 결과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물질의 한 속성을 관찰하고 확인하면 다른 속성들은 중첩된 가능성의 영역에 남겨진다. 미시 세계의 모순은 입자, 물질, 존재 등 연구자들이 가진 기존 개념의 한계를 드러낸다.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이러한 모순적이고 무질서하고 불확정적인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의 기계적 인과율로 이어질 단서를 찾고 있다. 장자가 관찰한 자연은 어떤 의도나 목적, 설계도 갖지 않은 채 무위했다. 각각의 사물과 사태들은 그저 서로에게 기대어(待對) 생겨나고, 개개의 생명은 기(氣)의 취산에 따라 생멸하지만 전체로 보면 자연은 균평(天均)을 유지한다. 개별자들의 운동이 모여 도를 이루는데, 인간의 분절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은 모든 사태의 가능성을 한 덩어리 안에 품고 있는 도의 모순을 표현할 수 없고, 그 개념들로 구성된 인간의 사유로는 도를 이해할 수 없다. 개체의 의식으로서의 ``나``(我)가 아닌 세계와 연결된 고리로서의 ``나``(吾)를 회복한, 환중(環中)의 정신경계에서야 비로소 나를 둘러싼 세계에 일어나는 변화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안명은 그러한 변화의 의미를 깨닫고 주어진 운명에 편안히 머무는 마음가짐이며 무위는 아직은 완료되지 않은 변화의 흐름에 참여하는 행위이다.